동물윤리의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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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하버드 대학교의 심리학 교수인 스티븐 핑거는 폭력의 역사를 다루면서 “1975년 이래 서구 문화는 동물에 대한 폭력을 용인하지 않게 되었다”라고 말합니다. 이 1975년은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이 출간된 해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동물해방』은 동물이라는 주제를 사회의 담론으로 끌어들였으며 동물윤리가 지향해야 할 원리를 성공적으로 제시하였습니다.
『동물해방』에서 제시하는 동물윤리의 원리는 이익동등고려입니다. 공동체 내에서 한 구성원의 이익이 다른 구성원의 이익보다 더 고려되어서는 안된다는 주장입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아 온 사람에게는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리는데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면 막연한 이야기입니다. 구성원들간에 이익 충돌이 빈번하게 발생하는데 그 때 어떻게 할 것인가-다수의 이익을 위해 소수의 이익을 희생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그리고 고려해야 할 이익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실제적 문제에 대해 저 원리는 답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윤리철학자들은 이익동등고려원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공리주의니 권리론이니 나뉘어, 제기된 문제들을 중심으로 논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 막연한 주장이 왜 동물윤리로 와서는 성공적인 원리가 되었을까요? 그것은 엄청나게 많은 동물들이 심각한 고통을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리주의 관점에서 다수의 이익을 위해 소수가 희생되는 것이 정당하다고 하더라도 동물을 그 소수로 분류하기에는 너무 숫자가 많습니다. 또 권리론에서 권리의 대상이 되는 이익으로 무엇을 내세우든 그러한 논의가 무색할만큼 동물들은 실존적으로 심각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피터 싱어는 ‘수많은 동물의 심각한 고통’을 드러내고 그것으로써 잠재적인 철학적 차이를 압도해 버렸습니다. 이를 토대로, 피터 싱어는 동일한 기준에 따라 이익이 고려되는 도덕의 지평 속으로 동물을 넣을 수 있었습니다. ‘수많은 동물의 심각한 고통’이 현실로 남아 있는 한, 이익동등고려는 동물윤리의 원리로서 빛을 발할 것입니다.
이익동등고려가 제시되기 전에 동물윤리의 원리는 공감이었습니다. 공감은 대상의 감정을 함께 느끼는 상태입니다.
배고픈 쥐에게, 레버를 누르면 먹이를 먹을 수는 있지만 동료에게 고통이 가해지는 장치를 제공하면, 일반적으로 배고픈 상태에 머무르기를 선택합니다. 비슷한 실험을 원숭이를 대상으로 하여도 결과는 마찬가지인데 무려 12일간 배고픔을 견딘 원숭이도 있었습니다. 인지적 요소를 무시하고 이 결과를 설명하자면 쥐와 원숭이가 동료의 고통에 공감함으로써 겪게 되는 고통이 배고픔의 고통보다 더 크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에게도 이런 공감 능력이 있습니다. 진화 역사 초기부터 있었습니다. 다음은 고대에 박제되어 오늘까지 전해져 온 공감의 사례입니다.
“신이 다음과 같은 내용을 호흘에게 들었습니다. ‘왕께서 당상에 앉아 계시는데, 소를 끌고 당하로 지나가는 자가 있었습니다. 왕께서는 이를 보시고 “소가 어디로 가는가?”하고 물으시자, 대답하기를 “장차 종의 틈을 바르는 데 쓰려고 해서입니다” 하였습니다. 왕께서 “놓아주어라. 내가 그 두려워 벌벌 떨며 죄없이 사지로 나아감을 차마 볼 수 없다” 하시니, 대답하기를 “그렇다면 흔종(釁鍾)을 폐지하오리까?” “어찌 폐지할 수 있겠는가? 양으로써 바꾸어 쓰라.”하셨다.’ 합니다. … 이것이 바로 인(仁)을 하는 방법이니, 소는 보았고 양은 아직 보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맹자』)
다수의 사람들은 공감능력이 있어서 고통을 느끼는 대상을 배려합니다. 그러나 공감은 대상이 눈 앞에 없을 때 발생하거나 유지되기 어렵습니다. 또 선택적으로, 외집단을 배제하고 내집단을 향해서만 작동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윤리적 판단은 때로는 감성으로써 포착되지 않는 대상에 대해 추상적 사유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공감은 윤리의 원리로서 충분하지 못합니다. 또 눈앞에 있는 대상이나 내집단을 향해서만 공감이 작용하여 배려자원을 편향적으로 배분하는 부정적 결과도 낳습니다.
공감의 가장 부정적 영향은, 대상의 고통에 대한 공감이란 나의 고통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대상의 고통을 직면하는 것을 회피할 동기로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고통사라도 감사할 만큼 고통스럽게 사는 수많은 동물들이 있는데 보기 괴롭다고 이들을 외면하는 경우는 매우 흔합니다. 이렇게 되면 내집단과 외집단의 구분이 점점 더 공고해지게 되고 외집단에는 가장 고통을 받는 동물들이 속하게 됩니다. 보통의 사람들로 구성된 동물단체 역시 이러한 위험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다수 동물의 심각한 고통을 없애는데 우선적으로 사용되어야 할 기부자원이 지금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동물윤리는 공감원리가 아닌 이익동등고려원리를 그 토대로 하여야 합니다. 내 눈 앞의 몇몇 개체가 아닌, 인간에 의해 관리되는 동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축산동물을 주목하여야 합니다. 내 눈 앞의 덜 고통스러운 동물이 아닌, 가장 심각한 고통을 겪고 있는 실험동물을 주목하여야 합니다. 『동물해방』이 인간의 동물 이용 유형 중 실험동물과 축산동물만을 다룬 것은 이익동등고려원리에 잘 부합하는 전략이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케어의 독특성은 이익동등고려원리에 철저히 기반한 단체라는 점입니다. 역량의 한계로 실험동물에 접근하지는 못하지만, 축산동물의 일종인 식용목적 사육견을 주된 이슈로 제기해 왔습니다. 눈에 밟히는 개와 고양이 외에 말, 당나귀, 염소, 돼지, 소를, 할 수 있는 한 구조해 왔습니다. 어류를 즐겨 먹는 회원들이 이탈할 것을 감수하고 어류를 잔혹하게 죽이는 영상을 게재하였습니다. 모금된 자원을 잘 꾸며진 시설을 짓거나 특정 동물에 집중하여 사용하지 않고, 최대한 많은 동물들을 위해 배분하였습니다. 이 모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동물이 극심한 고통을 받는 현장에 늘 머무르고 싸우고 외침으로써 동물의 이익 역시 진실로, 심각하게 고려되어야 함을 우리 사회에 각인시키고자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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