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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샤’에게 대한민국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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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샤’에게 대한민국은 무엇입니까? 

대통령님, 우리 역사를 돌아볼 때마다, 앞선 세대가 겪어야 했던 깊은 고통과 희생이 떠오릅 니다. 

그 위에 세워진 오늘의 대한민국을 생각하면, 내가 누리고 있는 많은 것들 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깨닫고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동물의 삶을 살펴보면 우리가 물려받은 유산이 참으로 섬뜩하게 다가옵니 다. 고통을 피하는 것은 몸에 새겨진 인간의 본성입니다. 이 점에서 동물도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동물을 인간이 단지 수단으로 대하여 고통을 겪게 하는 것은 어떤 정의관(conception of justice)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수많은 동물에게 극심한 고통을 가하고 있습니다. ‘파샤’라는 이름의 개는 그런 동물 중 하나입니다. 

지난 8월 충남 천안시 한 산책로에서 50대 남성이 러프콜리 품종의 대형견을 전기자전거에 매단 뒤 30분간 달 렸습니다, 당시 천안은 기온 28.1도, 습도 79%의 후텁지근한 날씨였습니다. 

결국 파샤는 열사병으로 사망하였습니다. 견주는 경찰에게 "개가 살이 쪄 운동시키려고 한 것"이라고 진술하였습니다. 

당시 산책로에는 발바닥이 떨어져 나가 흘린 핏자국이 4km에 이르렀습니다. 죽음 직전에 숨을 헐떡이며 비명을 지르는 영상을 본 시민들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한번 쓰러진 개를 또 달리게 하고, 다시 쓰러졌을 때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견주에 대해 시민들은 크게 분노하였습니다. 

경찰과 소방대가 왔음에도 불구 하고 개를 즉시 병원으로 옮기지 않고 시청공무원이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시청 공무원은 가까운 동물병원으로 옮기는 대신, 거리가 열 배나 멀고 응급의료가 가능하지 않은 동물보호센터로 갔습니다. 개는 이송 도중 사망했습니다. 

견주, 경찰과 소방대, 시청공무원은 모두 정신이 나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너무나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견주는 성당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고, 많은 반려인처럼 개를 기르며 힐링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경찰과 소방대, 시청공무원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공무원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 상황을 설명해야 할까요? 

결론은, 우리 모두가 물려받은 유산인, 인간이 동물을 대하는 제도와 태도가, 동물 보호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입니다. 

전국의 지자체가 직접 혹은 위탁으로 운영하는 동물보호센터는 200여 개인데 이 안에서 매년 3만 마리에 이르는 동물이 사실상 방치되어 죽고 있습니다. 

이삼일에 한번 꼴로 동물의 죽음을 겪는 지자체에서 파샤가 뭐가 특별한 존재라고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까요? 우리는 이러한 현실을 똑똑히 인식하는 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동물보호를 넘어 동물복지로“와 같은 구호는 사람이 듣기에는 좋으나 동물에게는 오히려 문제의 초점을 흐리는 이야기가 됩니다. 

우리의 제도와 태도가 동물보호에도 한참 못 미친 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동물들을 학대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논의를 집중해야 합니다. 

그것이 파샤가 죽음으로써 우리에게 남긴 교훈입니다. 동물학대를 예방하고 학대받은 동물을 신속하게 구조함에 있어서 우리나라 법제는 심각한 결점을 안고 있습니다. 

그 중 세 가지를 언급하고 대안을 제시해 보겠습니 다. 동물보호법에서 “동물학대”란 동물을 대상으로 정당한 사유 없이 불필요하거나 피할 수 있는 고통과 스트레스를 주는 행위입니다. 

또한 굶주림, 질병 등에 대하여 적절한 조치를 게을리하거나 방치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동물학대가 극심하여 상해를 입거나, 질병이 외관상으로 나타나거나, 

동물이 쓰러져야, 비 로소 보호조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실효성의 제한이 첫 번째 결점입니다. 우리 모두가 물려받은 유산이 동물보호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동물 보호법의 문언과 괴리되는 공무원의 이러한 관행은 예상가능한 것입니다. 인간은 행동의 자유가 있습니다. 괴롭힘을 당하거나 질병과 굶주림을 겪을 때 극단적 상황에 이르기 전에 

스스로를 보호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동물은 인간에 의해 철저히 통제되고 있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고, 동물의 고통에 무심한 소유자도 드물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보통수준의 동물학대가 방치 되다가 회복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진행되는 일이 빈번합니다. 문제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보통수준 학대 단계에서 개입이 잘 안 된다는 것입니다. 

대안으로는, ‘심각한 동물학대에 이를 수 있는 위험성이 높은 행위’라는 개념을 도입하는 것입니다. 

심각한 동물학대가 있기 전이라도 위험한 행위에 대해서는 식별이 용이하고 개입의 부담도 덜합니다. 이러한 행위로부터 동물을 보호하자는 것입 니다. 

개를 차량이나 오토바이에 묶어 끌고 가는 행위는 뉴스에 종종 등장합니다. 겉으로는 운동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개에게 극도의 고통과 열사병, 관절 손상, 

심지어 사망까지 초래할 수 있는 위험천만한 행위입니다. 호주 퀸즈랜드주, 미국 매사추세츠주 등은 법으로 이러한 행위를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현행 법 하에서는, 파샤와 같은 개가 쓰러지기 직전에 제지되었다 해도 견주는 단순히 운동이고 건강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경찰이나 지자체 공무원은 아무 조치도 취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차량, 오토바이, 전기자전거 등에 개를 묶어 끄는 행위가 위험한 행위임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위험한 행위라는 개념이 도입되어 있으면 보호조치를 취하기가 용이 합니다. 또한 흔히 밭지킴이 개라고 불리는 분리사육도 심각한 동물학대에 이를 위험을 안 고 있습니다. 

동물단체에 들어오는 학대제보 중 가장 빈도가 높은 것이 분리사육 입니다. 밭지킴이 개를 없애는 것은 개식용 종식 다음 단계의 과제라고 할 만큼 그 수가 많아 보입니다. 

거주지로부터 떨어진 장소에서 장시간 개를 실외에 묶어 기르는 행위는 탈수, 저체온증, 폭염으로 인한 열사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위험을 초래합니다. 

화재나 홍수 등 재난 상황에서는 도망치지 못해 목숨을 잃기 쉽고, 다른 동물의 공격을 받아도 피할 수 없습니다. 

나아가 날카로운 폐자재와 쓰레기 더미 속에 방치되거나, 불결한 환경에서 모기와 진드기로 인한 질병에 시달 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또한 개는 장기간의 고립을 견디지 못하는 동물인데, 분리 사육은 이러한 고립을 강요하여 극심한 스트레스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현행법은 이러한 위험으로부터 동물을 보호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위험한 행위라는 개념이 도입되어야 하는 또 한 가지의 사례입니다. 

이상 두 가지 사례는 대표적인 예시에 불과합니다. 이를 예시로 하여 상해 또는 질병 발생의 개연성이 높은 위험행위를 한 사람으로부터 동물을 보호하는 조항을 신설할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지자체의 동물보호조치에 동물단체를 적극 끌어들여야 합니다. 동물학대사 건이 벌어졌을 때 공무원은 보호조치에 적극 나서지 않습니다. 

남의 동물을 데리 고 오는 것이 소유권 침해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헌법에 국민의 자유와 권리가 제한 가능하다고 되어 있지만, 

동물을 위해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한다는 것을 어색하게 느끼는 사람이 많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학대자 역시 보 호조치에 저항하기 마련이므로 보호조치의 요건이 어떻게 바뀌든 

보호조치가 이루 어지기 어렵습니다. 지금까지 지자체에 의해 이루어진 동물보호조치의 상당히 많은 부분은 동물단체의 개입에 의해 등 떠밀려 된 것입니다. 

사실 지자체는 현장에서 동물보호조치를 오히려 방해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동물단체에 반대하고 학대자의 편을 듦으로써 학대자를 당당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동물보호조치를 방해할 뿐 아니라 사회적 갈등을 조장하고 행정력을 엉뚱한데 낭비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앞에서 말한 우리가 물려받은 유산입니다. 

공무원들을 보고 뭐라 한 다고 해서 고쳐지기도 어렵습니다. 학대자도 사람인데, 사람과 맞서면서까지 말 못하고 힘도 없는 동물의 편에 설 인센티브가 없기 때문입니다. 

동물의 편에 서서 적극 보호조치를 취할 집단은 동물단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보호조치의 일부를 동물단체에 위탁하여야 합니다. 

현재 농림부에 대해서 만 정해져 있는 위탁 규정을 시군구까지 확대하고 보호조치도 이에 해당함을 명시 하여야 합니다. 

동물단체와의 대립이 아닌 협업을 통해 비로소 지자체도 동물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것입니다. 셋째, 학대자에 의한 동물보호조치 방해행위를 제압해야 합니다. 

공무원은 동물이 있는 장소에 대한 출입·검사 권한을 가지고 있지만 동물의 소유자가 거부·방해 또는 기피한 경우에 약간의 과태료만을 내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는 긴급성을 요하 는 동물보호조치의 속성에 비추어 매우 심각한 동물보호법의 결점입니다. 공무원 또는 공무원의 위탁을 받은 동물단체가 동물이 있는 장소에 출입·검사하고 

동물보호조치를 취하는 것을 방해하는 행위를 형사범으로 다루어야 합니다. 대통령님, 파샤는 동물에게 대한민국은 무엇인지 묻고 있습니다. 이제는 국가가 나서야 합니다. 

우리 사회가 물려받은 잘못된 제도와 태도를 더 이상 다음 세대로 떠넘길 수 없습니다. 동물의 고통을 외면하는 순간, 인간이 누리는 정의와 인권 또한 공허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파샤가 겪은 고통이 헛되지 않도록, 동물을 학대로부터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법과 제도를 마련해 주십시오. 

그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이 진정으로 기본이 보장 되는 나라임을 보여주는 길이며, 대통령님의 역사적 책무 중 하나라 믿습니다.

2025년 9월 28일 동물권단체 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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