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차회의] [발제] 살처분과 동물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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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처분과 동물보호
한민정(법학박사)
Ⅰ. 서론
코로나19(COVID-19)가 국내에 발병한 지도 이제 3년이 넘었다. 그간 국내 누진 확진자 수는 3천만 명이 넘고, 이 가운데 3천 3백 명 정도가 사망했다. 공식적으로 집계되지 않은 확진자수까지 합하면 전 국민의 3분의 2가 코로나바이러스에 걸렸고, 이 중 약 0.1%가 사망한 것이다. 비단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유래 없는 팬데믹(pandemic) 현상을 겪었고, 이로 인한 세계 경제 침체의 여파는 현재도 계속적으로 진행 중인 상황이다.
코로나19 초기 발병 시 우리나라는 소위 ‘K-방역’ 시스템을 도입하여 감염병의 확산을 막고자 심혈을 기울였고, 이로써 전 세계에서 모범 방역국으로 인정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2년 초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대확산으로 말미암아 K-방역은 속수무책의 상황에 빠지게 된다. 비로소 엔데믹(endemic)에 다다른 현재 시점에서 돌이켜 생각해 보면,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인간이 이기겠다는 속셈은 다소 어리석어 보인다.
인류의 역사에서 역병의 출현은 농경의 시작, 그리고 가축의 사육으로 비롯된 것이다. 세계 인구의 급격한 감소를 유발한 중세의 흑사병과 1918년 스페인 독감 역시 동물에서 유래한 바이러스의 인간 체내 공격으로 인한 것이었다. 코로나19 역시 이렇게 역사에서 반복적으로 되풀이되었던 팬데믹의 한 양상이었고, 이와 같은 전세계적 전파가 가능한 새로운 바이러스의 출현이 언제 또 이루어질지는 미지수이다. 그러나 현재의 인간사회가 그렇듯이 인간이 도시에서 밀집하여 거주하며, 인간과 자원의 교류가 전 지구적 관점에서 이루어지고, 공장식 축산의 밀집 사육이 계속 되며, 야생동물의 서식지 파괴가 여전하다면 새로운 바이러스의 출현은 시기를 예측할 수 없을 뿐이지, 거의 확실하다고 본다.
이처럼 인간에게 동물은 동전의 양면처럼 인간에게 유익함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전염병이라는 질병을 야기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양면성은 인간과 동물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생겨나는 생명현상의 하나의 기제이기도 하다. 즉 인간이 모여 사는 습성과 동물을 먹기 위해 사육하는 습속이 바이러스의 변이를 유발하면서 일부 종에만 침투했던 바이러스가 인간에게도 침투가 가능한 바이러스를 생겨나게 하는 것이다. 이 신종 바이러스는 종래 인간 신체에 전파된 적이 없기에 면역이 없기 마련이고, 이로써 치명적인 결과를 낳게 된다.
현대의 축산업은 과거 사회에서는 유래 없이 인위적으로 많은 동물들이 밀집한 상태에서 사육되는 시스템이다. 따라서 각종 바이러스가 급격하게 전파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공장식 축산이 만연해지면서 구제역, 조류독감 등의 가축전염병이 빈번하게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전염병은 변이 과정을 거쳐 인간에게도 전이될 수 있고, 전염된 이후에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기 때문에 보건 당국에 의해 철저하게 관리된다. 즉 인간을 죽일 수도 있는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해당 질병에 걸린 가축들(혹은 질병에 걸렸다고 의심되는 가축들까지)은 매정하게 도살(살처분)되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Ⅱ. 살처분의 개요
1. 살처분의 기원과 한계
살처분은 18세기 우역(牛疫)을 막는 방책으로 고안된 것으로, 치사율이 높은 이 전염병의 바이러스의 전파를 막기 위한 당시의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러나 가축의 모든 질병에 살처분 정책이 유효한 것은 아니다. 즉 이미 토착화되었거나, 폐사율이 높지 않은 구제역과 같은 질병은 가축의 관리를 잘 해주면 스스로 치유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살처분 정책이 행해질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축이 구제역에 걸렸을 시 무자비한 살처분 정책이 행해지는 이유에는 축산업이 현대 사회에서 이미 큰 산업의 자리매김하였고, 이에 따라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소가 ‘비용 절감’이 되었기 때문이다. 즉 구제역을 막기 위해 가축에게 예방접종을 실시하는 것보다 도살을 감행하는 것이 더욱 경제적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한편 공장식 축산에서 축산동물은 하나의 총체적 동물이 아니라 상품, 혹은 각 개별적인 부위들로 여겨진다. 즉 달걀, 닭다리, 날개, 닭가슴살 등 고기로 생각하지, 살아있는 동물로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상품’으로서 관리되고, 최적화된다. 여기서 생명의 불확실성, 즉 질병 등은 통제 가능한 것이라고 치부된다. 가축의 전염병 역시 살처분이라는 방법으로 깔끔하게 해결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는 단순히 가축을 죽이고 매장함으로써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가축 살처분의 매몰 장소에는 대체로 처음에는 예상치 못했던 2차 피해가 이어진다. 매몰지의 침출수에는 암모니아질소, 대장균 등 각종 세균이 포함되어 있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이 침출수 유출에 의한 하천·지하수·토양이 오염되며, 매몰지 부속 시설의 손상·부식에 의한 병원균, 사체 유출 등 관리부실로 의해 세균감염의 전파 위험도 증가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살처분은 그 효과가 명확하지도 않을뿐만 아니라 추후 각종 보건 위생상의 문제도 발생시킨다.
2. 살처분의 세계적 현황
(1) 대만
대만은 1997년 구제역 발생 이후 가축질병 살처분과 백신 정책을 펼쳤다. 이때 전체 돼지 1천 68만 마리 가운데 약 40%에 해당하는 385만 마리가 살처분 되었고, 이 과정에서 안락사 약이 떨어지는 바람에 수백만 마리의 돼지가 생매장되었다. 한편 구제역 발생 초기 단계부터 백신 3천만 개를 접종했으나, 한 달 뒤인 4월 구제역이 더욱 창궐하면서 급기야 백신이 바닥났고, 1천만 개를 긴급 수입해 추가 접종한 후에야 간신히 구제역을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계속해서 구제역은 발생했고, 이로써 대만의 돈산업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종래에는 해외 수출 규모가 상당한 대형 돈산업을 육성하였다면, 이 규모를 축소하여 내수 위주의 산업으로 정착시키고 적정 규모를 유지토록 하였다. 또한 모돈 500두 이상 사육농가는 반드시 수의사를 고용토록 하였다. 그리고 전염병 발생 시 질병 전파를 방지하기 위하여 1997년 7월 1일부터 돼지를 거래할 때 개체표시의 이표 부착 및 백신 접종증명을 구비토록 하였다.
한편 1997년 구제역으로 대규모 피해를 입은 대만은 이후 감염된 동물에 대해 매몰보다는 소각 위주로 처리하고 있다. 또한 축산 농가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백신 비용을 보조하고 각 농장의 백신 신청, 구매, 접종 현황을 파악할 수 있는 구제역 방역정보 시스템을 구축하여 운영하고 있다. 더불어 백신 구매 증명서와 사용된 약병을 직접 수거하여 농가의 백신 예방 접종을 확실히 확인하고 있다. 결국 대만은 20년간 꾸준한 백신 접종은 물론 가축 및 축산농가의 방역 모니터링 데이터화를 통해 2018년 7월부터 백신 접종을 중단하고 OIE(국제수역사무국)로부터 구제역 청정국으로 인정받았다.
(2) 영국
영국은 2001년 구제역을 겪으면서 정부 재정지출은 약 4조원, 민간 농가 피해는 약 8조원의 손실을 입은 바 있다. 이후 영국은 정부조직 개편과 동물방역과 농업의 미래를 조사하는 위원회 운영을 통해 혁신적인 방역정책을 수립하였다. 또한 영국 정부는 초기 살처분만 고려하던 기존의 대응 정책에서 백신 접종 방식으로 탄력적으로 확대시켜 왔으며, 중앙정부에 통합 지원시스템을 마련하고 방역작업과 살처분 보상금 예산을 증액 시키는 등 방역처리 방식과 제도를 적극적으로 정비하여 2002년 1월 22일 구제역청정국으로 지위를 회복하였다.
(3) 일본
일본의 방역지침은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감염병에 걸린 환축은 24시간 이내 살처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고, 72시간 이내에 매각을 완료해야 한다. 다만 일본의 경우 가축 소유자의 책임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즉 농장이나 사육시설은 소독 설비ᆞ위생대책 등을 갖추어야 하며 위생관리 상황을 매년 보고하고, 만일 감염병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하여 매각지를 확보해야 한다.
3. 세계동물보건기구(WOAH; World Organization for Animal Health, 이전명칭 Office international des épizooties; OIE)
세계동물보건기구는 전 세계적인 가축 위생의 향상과 동물 복지의 증진을 위해 설립된 국제기구로서, 대한민국은 1953년 11월 18일 정회원국으로 가입한 이래 매 총회 및 지역회의에 농림축산검역본부 관계자들이 참석하여 왔다.
세계동물보건기구는 육상동물위생규약(Terrestrial Animal Health Code)을 제정하여 중요한 가축 질병의 확산 방지와 박멸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동물들의 복지 증진을 위해 정보 및 기술 제공뿐 아니라 구체적인 살처분 방법까지도 제공하고 있다. 육상동물 규약의 구제역 비발생국 지위는 육류 수출 허가증과 같은 효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가축전염병은 육류 수출을 막고, 수입을 거부할 수 있는 일종의 무역 장벽인 것이다. 그래서 축산물 수출 의존도가 높은 나라에서 가축전염병이 발생하면 살처분 방식을 이용하여 빠른 시간 안에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게 된다.
한편 구제역은 감염전파 속도가 매우 빨라 국제 교역상 세계동물보건기구의 규정에 의해 발병하면 즉시 신고해야 한다. 이로써 국가 간 수출입이 불가능하게 되는데, 이 때문에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발생시킨다. 따라서 세계동물보건기구는 구제역 비발생국 지위를 인정하는 기관이며, 구제역 비발생국 지위는 수출 허가와 같은 것이다.
Ⅲ. 국내법에서의 살처분
1. 살처분의 종류
가축의 살처분은 「가축전염병 예방법」 제20조에서 제1항에서 규정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본조 제1항의 본문을 ‘일반적 살처분’ 규정으로, 단서를 ‘예방적 살처분’으로 구분한다. 일반적 살처분은 역학조사나 정밀검사 등을 통하여 질병의 감염 등을 확인한 후, 해당 질병으로 인한 피해를 차단하기 위해 시행되는 살처분으로, 타인의 생명이나 건강, 재산 등에 대한 중대한 침해가 확실하거나 거의 확실한 경우, 그 위험을 현재 보유하고 있는 동물의 생명을 박탈하여 처분하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 살처분은 기속행위로 규정되어 있으므로 살처분의 요건이 충족되면 반드시 그대로 집행해야 한다.
예방적 살처분은 가축전염병 등 질병감염 여부와 상관없이 ‘피해 발생의 우려가 있는 경우’에 선제적 조치로 이루어지는 살처분을 말한다. 예방적 살처분은 아직 확실한 위험이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타인의 생명이나 건강 재산 등에 피해 발생의 우려가 있는 경우(잠재적 위험으로 인한 피해 발생의 개연성이 존재하는 경우) 동물의 생명을 박탈하여 소각, 매립 등의 방식으로 처분하는 것이다. 이는 재량행위로 규정되어 있으므로 행정기관의 재량에 따라 살처분 여부가 결정된다.
2. 살처분의 시행
(1) 가축의 도살 과정
살처분 명령을 받은 자는 해당 가축을 사살·전살(電殺: 전기를 이용한 살처분 방법)·타격·약물사용 등의 방법으로 즉시 살처분하여야 한다. 즉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하여 의식이 없는 상태로 도살 단계로 넘어가도록 규정되어 있다.
동물보호법 개정안 제13조 | 동물보호법 시행규칙 제6조 | 가축전염병 예방법 시행규칙 제23조 |
① 누구든지 혐오감을 주거나 잔인한 방법으로 동물을 도살하여서는 아니 되며, 도살과정에서 불필요한 고통이나 공포, 스트레스를 주어서는 아니 된다. ② 「축산물 위생관리법」 또는 「가축전염병 예방법」에 따라 동물을 죽이는 경우에는 가스법ㆍ전살법(電殺法) 등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방법을 이용하여 고통을 최소화하여야 하며, 반드시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다음 도살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매몰을 하는 경우에도 또한 같다. ③ 제1항 및 제2항의 경우 외에도 동물을 불가피하게 죽여야 하는 경우에는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에 따라야 한다. | ① 법 제10조제2항에서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방법”이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의 방법을 말한다. 1. 가스법, 약물 투여 2. 전살법(電殺法), 타격법(打擊法), 총격법(銃擊法), 자격법(刺擊法) ②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은 제1항 각 호의 도살방법 중 「축산물 위생관리법」에 따라 도축하는 경우에 대하여 고통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정하여 고시할 수 있다. | ③ 법 제20조제1항(법 제28조에서 준용하는 경우를 포함한다)의 규정에 따라 살처분 명령을 받은 자는 해당 가축을 사살ㆍ전살(電殺: 전기를 이용한 살처분 방법)ㆍ타격ㆍ약물사용 등의 방법으로 즉시 살처분하여야 한다. |
[표1] 동물의 도살방법 관련 법규정
(2) 추후 보상
「가축전염병 예방법」 시행령 제11조 제1항 별표2 제1호(마)에 따르면, 가축을 살처분한 경우, 살처분을 한 날을 기준으로 한 살처분한 가축의 평가액의 전액을 지급하지만, 질병의 종류별로 그리고 방역기준 준수여부 등에 따라 차등 보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돼지열병 또는 브루셀라병(소의 경우만 해당한다) 감염가축이 발견된 농가에 대해서는 가축평가액의 100분의 80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급하고, 결핵병(사슴의 경우만 해당한다) 감염가축이 발견된 농가에 대해서는 가축평가액의 100분의 60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급한다.
또한 구제역 또는 고병원성조류인플루엔자 또는 아프리카돼지열병 감염가축이 발견된 농가에 대해서는 방역기준을 얼마나 준수했는지의 여부에 따라 상이한 금액을 지급한다.
한편 같은 조 별표2 제2호(하)에 따르면 법 제20조제1항에 따른 살처분 명령을 위반한 경우 다음의 구분에 따라 보상금의 감액이 가해진다.
1) 살처분 명령을 내린 때부터 24시간 이상 48시간 미만 살처분이 지연된 경우: 가축평가액의 100분의 10에 해당하는 금액
2) 살처분 명령을 내린 때부터 48시간 이상 72시간 미만 살처분이 지연된 경우: 가축평가액의 100분의 30에 해당하는 금액
3) 살처분 명령을 내린 때부터 72시간 이상 살처분이 지연되거나 살처분을 하지 않은 경우: 가축평가액의 100분의 60에 해당하는 금액
3. 살처분 규정의 문제점
「가출전염병 예방법」과 「동물보호법」에서 규정되고 있는 동물의 살처분 관련 조항들을 조화롭게 해석하면, 가축이 심각한 전염병에 걸려 그것의 도살 말고는 해결의 수단이 없을 때 최후의 수단으로 살처분을 시행하되 이 역시 동물에게 최소한의 고통을 주는 방법으로 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구제역이나 조류독감이 발생한 축사에서 살처분을 행한다고 하였을 때 이 규정을 따르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 가장 큰 이유는 살처분된 가축의 보상 금액이 살처분을 얼마나 빨리 수행했는지에 따라서 유리하게 책정되기 때문이다.
시행령에 따르면 일단 살처분 명령이 내려지면 최소 24시간 이내에 모든 과정을 마쳐야 가축평가액에서 감액되지 않은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 즉 살처분 시행이 하루만 지체되어도 축산농가에게는 10%에 해당되는 금액의 손실이 발생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축산업이 수많은 가축을 사육하는 공장식 축산에 해당되기 때문에 이 10%의 감액은 그들에게 큰 손실로 다가올 것이다.
수백, 혹은 수천 마리의 가축을 하루 안에 도살한다고 했을 때 아무리 수많은 인력이 동원된다 하여도 그들을 인도적으로,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최소한의 고통을 주도록 노력하면서 도살할 수 있을까? 이는 거의 불가능하리라 본다. 즉 법이 의도하는 인도주의적 살처분은 실제로 거의 이행되기 힘든 이상향에 불과한 것이다. 물론 그렇다 하여 가축의 인도적 도살을 최우선시 하도록 규정한다면, 전염병의 빠른 확산을 막기가 힘들 것이다. 즉 현대의 축산업 현실에서는 살처분과 동물의 인도적 도살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규정인 것이다.
Ⅳ. 살처분과 동물보호
1. 살처분 과정에서의 폭력
조류독감은 거의 매해 겨울마다 발생하곤 하기 때문에 살처분 역시 빈번하게 이루어진다. 닭의 살처분은 보통 ‘질식사’로 시작된다. 산란계의 경우 대부분 창이 없는 ‘무창’ 계사에서 케이지 사육을 하는데, 그곳의 환기팬을 끄는 것만으로 닭의 질식사를 유도할 수 잇는 것이다. 즉 닭은 산소가 없는 밀폐 공간에서 죽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이렇게 질식사 시키는 데에는 보통 12시간에서 24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다음날 방역 작업자들이 플라스틱 쓰레기통에 닭의 사체들을 쓸어 담는다. 이때 간혹 살아남아 뛰어나오는 닭들도 있곤 하다. 그런 닭들은 보통 방망이로 머리를 쳐 죽인다. 이렇게 모아진 닭의 사체를 포크레인으로 떠서 렌더링 기계, 즉 사체를 미생물과 함께 고열에서 분쇄하는 기계에 투입한다. 이로써 마침내 닭의 살처분이 완료된다.
한편 살처분 현장의 업무는 육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상당히 고강도의 업무이다. 반복되는 살처분과 시간의 압박은 죽음에 무감해진 노동자들을 폭력적으로 변하게 만든다. 아이러니하게도 살처분 과정에서 가축에게 직접적으로 행해지는 죽임을 의도하는 폭력이 가축을 살아있는 생명체로 인지할 수 있게 한다. 이로써 살처분 작업에 투입된 노동자들은 다양한 심리적 트라우마를 겪기도 한다. 이들이 트라우마를 겪게 되는 것은 노동강도의 문제도 있지만, 생명체를 무차별적으로 지속적으로 살상하는 일을 지속해야 하기 때문이다.
2. 살처분의 해결 방안
현행 「동물보호법」과 「가축전염병 예방법」은 모두 법상 인도적인 살처분 방법에 대하여 분명히 적시하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도 2019년 아프리카돼지열병의 발생 시 이산화탄소 질식사 방법을 사용하여 살처분 하도록 함으로써 과거의 살처분 때에 비해 동물의 처우가 개선되긴 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그 시행과정에서 정부차원의 지휘・감독이 쉽지 않으며, 살처분의 개별적인 상황에서는 동물보호법 등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발생하게 된다. 따라서 살처분 방식에 대하여 인도적인 집행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인도적인 살처분 방식의 미이행에 따른 처벌 규정을 가축전염병 예방법에 마련하여 인도적인 살처분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한편 윤종웅 ‘가금수의사회’ 회장은 “살처분은 최선이 아니라 최후의 방법이 되어야 한다”며, 살처분 뿐만 아니라 백신 등 다양한 방역체계가 동시에 병행되어야한다고 제언한다. 한국에는 백신 완제품을 만들 수 있는 기술력이 있기 때문에 빠르게 백신을 생산할 수 있고, 따라서 굳이 살처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수경 ‘환경과 공해 연구회’ 운영위원장 역시 살처분으로 가축 전염병을 막아낼 수 없다면 이제는 전염병을 키우고 번지게 하는 사육 환경을 개선하는 데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에 의하면 살처분은 경제적인 차원에서도 전혀 유익하지 않은 처사로, 2010년 이후 10년간 가축 전염병으로 인한 살처분 비용에 든 세금만 4조원에 육박한다고 한다..
바이러스의 목표는 본래 숙주를 죽이는 것이 아니다. 아주 치명적인 바이러스는 환자가 빨리 사망해서 병원체가 퍼져 나갈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극도로 치명적인 에볼라 유행이 아프리카에서 몇 년에 한 번씩 퍼졌다가도 저절로 소멸하는 이유다. 따라서 바이러스는 오랜 기간에 걸쳐 사람을 비롯한 포유류와 공진화하게 된다. 즉 숙주의 생명을 위협하지 않으면서 안정된 감염상태를 유지한다.
따라서 이처럼 바이러스가 공진화할 수 있는 환경을 우리가 지향한다면, 즉 공장식 축산을 서서히 개선시키고, 야생동물의 서식지를 보존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가축전염병 문제도 자연스레 해결될 것이고, 살처분도 없어질 것이라고 본다.
Ⅴ. 결론: 인도적인 가축 살처분이 과연 가당키나 할까?
어쩌면 전염병은 인간의 삶에서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숙명인지도 모른다. 특히 공장식 축산과 야생동물의 서식지 파괴는 인간의 산업화가 고도화로 이루어지면서 더욱 가속화된 사회현상으로 이에 대한 경각심과 반성적 성찰이 없이는 미래 세대의 팬데믹 문제가 결코 해결될 수 없으리라 본다.
가축전염병 예방법은 그 법명에도 불구하고 가축전염병의 예방보다는 전염병에 걸린 가축을 처리, 즉 도살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진 것 같다. 물론 실제 축산업 현장에서는 가축의 전염병 예방을 위해 여러 가지 방안들을 고안하고 실행하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예방의 차원들은 매우 경시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아마도 가축전염병이라는 것이 운이 좋으면 걸리지 않는 것이고, 운이 나쁘면 걸린다는 것, 즉 예측가능하지 않으므로 우선 가축 사육에 소요되는 비용을 최대한 아끼자는 계산 때문인 것 같다.
우리의 실생활에서 축산동물은 ‘살아있는’ 동물이라는 사실보다는 하나의 식량으로 쉽게 간주된다. 동물의 물건성이 가장 극대화되어 구현되는 동물이 바로 축산동물일 것이다. 따라서 전염병에 걸린 가축은 부패한 음식, 하자있는 공산품과 같이 전량 폐기 처리하는 것이 당연시 되는 것이다. 여기서 단순한 물건의 폐기 처리 과정과 가축의 살처분 과정의 극명한 차이, 즉 ‘살아있는’ 동물을 강제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점은 간과된다. 이 과정에 수반되기 마련인 무자비한 폭력과 고통, 그리고 사회적 비용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인도적인’ 가축의 살처분이라는 방법이 있을까? 생각건대 ‘살처분’의 개념 자체가 이미 인도적 차원의 경계를 넘은 것이라고 본다. 가장 이상적인 가축전염병 예방의 방법은 공장식 축산업을 없애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이는 현대의 실정에 어긋나는, 과도하게 유토피아적인 생각으로 거의 망상에 가까워 보일 것이다. 좀 더 양보하여 농장동물의 습성을 중시하면서 사육하는 복지농장을 지향하는 방법으로 나아갈 경우에도 이것이 야기할 사회적 문제들이 등장한다. 즉 동물단백질 식품의 가격 상승으로 말미암아 빈부에 따른 동물단백질 접근에의 차별문제가 생겨날 수 있는 것이다.
즉 농장동물에 대한 동물윤리의 문제는 풀기 쉽지 않은 난제인 것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생존하기 위해 단백질(그것이 동물 단백질이든 식물 단백질이든)을 섭취해야 하기 마련이고, 이 기본적 욕구가 현대산업 사회에 이르러 값싸게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는 가능성에 합세해 극대화된 것이 바로 공장형 축산업인 것이다. 즉 공장형 축산업은 현대인의 집단 무의식적 욕망이 구현된 어떤 산물일 뿐이지, 어떤 특정 자본가 집단의 비윤리적 이익 추구의 산물은 아니라고 본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우리는 인간의 욕망이 동물에 대한 비윤리적, 혹은 폭력적 행위를 자행하게 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난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인간의 비윤리적·폭력적 행위를 인정하고 이를 지양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는 것이다. 즉 가축의 살처분이 필요악이라는 관점에 숨어있는 우리의 동물 단백질에 대한 욕망을 인식하고, 이 욕망을 다른 식으로 추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전술하였듯이 살처분은 가축전염병에 대한 유일무이한 해결방안이 아니다. 오히려 여러 가지 환경적 문제들을 야기하고, 살처분에 동원되는 직업인들에게는 정신적 트라우마를 야기하는 등 많은 잡음들이 발생한다.
무엇보다도 과학적 관점에서 보아도 바이러스는 단순히 가축을 살처분 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번에 온 세계를 들썩이게 한 신종코로나바이러스는 인수공통전염병이었지만 우리 실생활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가축에게서 유래한 것이 아니었다. 즉 인수공통전염병은 이미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동물에게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단순히 가축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인수공통전염병의 가능성 때문에 수많은 가축들을 살처분 한다는 것은 코로나 시대를 거친 현 시대에는 매우 야만적인 처사라고 본다.
물론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인수공통전염병에 대한 경각심이 더욱 높아지고, 따라서 가축에게서 발생할 수 있는 인수공통전염병에 대한 두려움이 더욱 커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가장 최선의 해결책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농장동물을 대규모로 사육하지 않거나, 동물단백질을 섭취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변이바이러스가 발생할 수 있는 기제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과학적으로 가장 설득력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법과 제도는 관성을 가지고 있어서 일단 생겨난 이후엔 없애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여러 전문가들의 과학적 견해들을 조합한 결과 가축전염병에 대한 그간의 법의 인식이 올바른 것이 아니었다면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고 본다. 즉 살처분으로 가축전염병이 결코 해결되지 않으며, 우리가 정말로 두려워하는 신종바이러스는 오히려 예측할 수 없는 어떤 기제들로 생겨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따라서 살처분은 무모한 살생이었음을 반성해야 할 것이다. 즉 이제 법은 느리더라도 서서히 ‘살처분 종식’이라는 목표를 지향해 나가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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