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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운동은 누구를 대상으로, 어떻게 싸워야 하나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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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운동은 누구를 대상으로, 어떻게 싸워야 하나 4>


동물운동은 시민과 연결되고 시민의 동물인지성(animal sensitivity)과 동물해방 실천의지 및 투쟁역량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동물학대사건의 현장에서 생방송을 하고 시민을 사건의 해결에 참여시킵니다. 동물운동의 이러한 활동이 동물구조를 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경우 동물구조가 수반됩니다. 


구조 직후, 동물의 처지는 다양합니다. 집단구조의 경우, 난민촌에 들어온 것과 비슷한 상황에 놓이기 쉽습니다. 개별구조의 경우 이 보다는 좋은 조건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구조가 일어났을 때의 동물단체의 사정이나 시민들의 사건 참여 정도에 따라서도 동물의 처지는 달라집니다. 


입양을 위한 최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많은 동물들이 남게 됩니다. 시간이 경과된 후에도 남은 동물의 삶의 조건은 균질할 수 없습니다. 각 보호소가 지어졌을 때마다 관련된 우연적 요소들이 서로 달랐기 때문입니다. 시설이 열악한 보호소를 더 개선하기 위해 노력은 하지만 차이는 남게 됩니다.


이런 차이를 전제하고, 동물운동이 운영하는 보호소의 평균적 질을 어떤 수준으로 유지할 것인지 선택을 해야 합니다. 이는 자원제약하의 최적화라는 경제학적 문제입니다. 좋은 시설을 지어 소수의 동물을 보호할 것인가, 좀 못한 시설을 지어 많은 동물을 보호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동물을 차별하지 않는 동물운동이라면 당연히 후자의 선택을 하여야 합니다. 얼마 전 돌아가신 프란치스코 교종께서 교회는 야전병원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동물운동이 운영하는 보호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성의 인도에 자신을 내맡기는 동물운동가가 아닌, 감정에 이끌리는 보통 사람이 이러한 선택을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감정은 내 눈 앞에 보이는 존재와 그렇지 않은 존재를 차별하고 내 눈 앞에 보이는 존재를 위해 자원을 집중시키게 됩니다. 최적화 문제 풀이라는 점에서 이것이 정답은 아니지만 인간은 어느 정도 그러한 속성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극단적으로 되면 문제가 됩니다. 누군가가 어떤 보호소가 열악하다고 반복해서 비난한다면 의심의 눈초리로 보아야 합니다. 이들은 동물운동을 방해하고 동물의 적으로 전락하게 되는데 시민들은 이들의 이기주의적 본질을 꿰뚷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싸워서 이기는 능력이라는 표현을 여러 번 사용했는데 이 능력 중 하나는 동물운동에 기어들어와서 반동물적 행위를 일삼는 이들을 식별하는 능력입니다. 열악했던 아크보호소를 열악하다고 말하는 대신, 헌신으로써 발전시켜 마침내 뉴아크를 만들고 사단법인까지 세워서 책임을 지려는 시민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기 감정이 소중한 사람에 머무르지 말고 효과적인 이타주의자가 되어야 합니다. 유튜브에서 “공감에 반대한다”를 검색해 보기 바랍니다. 심리학자 폴 블룸(Paul Bloom)이 서울대학교에서 강의한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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