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운동 칼럼 – 동물보호의 날을 맞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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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운동 칼럼 – 동물보호의 날을 맞이하며>
10월 2일 발행된 리영희재단 뉴스레터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하늘과 소, 말, 건초더미가 어우러진 언덕 위 집 한 채. 정부 보조금을 받긴 하지만 딱히 남을 해롭게 하는 것 없이 추수하고 감사하며, 신 앞에 자족하는 위스콘신 농촌 사람들에게 추수감사절은 평화로운 축제입니다. 하지만 위스콘신 주지사 후보였던 프란체스카 홍에게 그날의 의미는 전혀 다릅니다. 그는 굶주린 백인 이주민에게 선의를 베풀었다가 인종학살을 당했던 아메리칸 선주민의 입장에서 추수감사절 축제를 취소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어느 쪽도 사실 아닌 게 없고 어느 한쪽도 자신만으로 진실을 구성할 수 없습니다.”
‘굶주린 백인 이주민에게 선의를 베풀었다가 인종학살을 당했던 아메리칸 선주민’이란 대목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집니다. 인간을 위해 평생을 우유를 생산하던 젖소, 인간을 위해 평생을 알을 낳던 산란계, 인간을 위해 실험대 위에 올려졌던 동물들, 그리고 죽임을 당한 그들.
저는 동물보호법과 시행령에 나오는 ‘봉사동물’이라는 말이 참 싫습니다. 장애인을 위한 개, 수색하거나 탐지하거나 구조하는 개를 봉사동물이라고 하는데 젖소와 산란계, 실험동물만큼 인간을 위해 봉사를 한 동물이 어디 있습니까.
10월 1일 개정된 동물보호법은 봉사동물 및 은퇴 봉사동물에 대한 지원 근거를 마련하였습니다. 젖소 및 은퇴 젖소에 대한 지원은 없습니다. 소위 봉사동물은 자유의지로 협조했고 젖소 등은 강제로 당한 차이가 있는가요? 자유의지가 표현될 여지조차 주지 않았으면 더 미안해 하고 더 지원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저는 동물운동가입니다. 긴 이야기를 생략하면 동물운동은 보편윤리를 지향하는 운동 그 자체입니다. 동물운동이 인정하는 보편윤리의 수혜자는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동물운동가에게 동물은 개와 고양이, 젖소와 산란계, 실험동물 모두입니다.
10월 4일 동물의 날을 맞이하는 저의 마음은 이와 같습니다. 제 쪽은 하나의 사실일 것입니다. 진실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다른 쪽도 필요할 것입니다. 자신의 개와 고양이와 마냥 행복한 반려인의 마음 같은 것.
동물의 날이 반려인들에게는 반려동물을 존중하는 마음을 다지는 날이 되면 좋겠습니다. 사실 가족에게 존중이라는 것이 필연적이지는 않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매우 오랜 기간 가족은 가부장의 영토일 뿐 구성원에 대한 존중 같은 것은 자리 잡을 틈이 없었습니다. 어원적으로도 고대 로마의 ‘파밀리아(familia)’는 따뜻한 혈연 공동체가 아니라 한 집안의 가부장이 소유한 모든 것, 즉 아내와 자식뿐 아니라 노예와 가축 전체를 아우르는 소유와 지배의 단위였습니다.
그 안에서 노예들의 처우와 쓰임은 저마다 달랐습니다. 주인의 집안일과 회계를 도맡거나 아이를 교육하던 노예가 있었고, 주인의 곁을 지키며 특별한 총애를 받던 노예도 있었습니다. 반면 뙤약볕 아래서 채찍을 맞으며 밭을 갈고 돌을 나르다 쓰러져 죽어가던 노예도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더 따뜻한 밥을 먹고 주인의 살가운 눈길을 받았을지 모르지만, 그들의 본질이 ‘주인의 필요와 처분에 달린 재산’이었다는 사실만큼은 조금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동물에게 들이대는 잣대 역시 많은 경우 그 옛날 가부장의 가족과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인간의 안전과 사회 유지를 위해 특수한 능력을 발휘하도록 훈련받아 ‘봉사동물’이라 불리는 개가 있는가 하면, 주인의 애완품으로 취급받는 개와 고양이가 있고, 햇빛 한 줌 들지 않는 축사와 실험대 위에서 철저히 소외된 채 생명을 쥐어짜내는 젖소와 산란계, 실험동물이 있습니다. 이들 개와 고양이, 젖소는 실제로 ‘내 새끼’로 불립니다. 방치 등에 의해 동물학대를 일삼으면서도 누가 뭐라 그러거나 폭염으로 폐사하면 그렇게 말합니다.
동물보호의 날이 반려인들에게는 반려동물을 존중하는 마음을 다지는 날이 되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젖소와 산란계, 실험동물을 떠올리지는 않더라도 반려동물을 애완품이 아닌, 섬세하고 변화하는 요구를 가지고 있고 그것이 충족되지 않으면 고통과 스트레스를 느끼게 되는 존재, 자유를 통해 행복을 느끼는 존재로 받아들였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국가와 지자체가 애완인의 지배 하에 고통과 스트레스를 겪고 있는 동물을 구조할 책무를 자각하는 날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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