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운동 칼럼> - 구조가 문제로 보이는 자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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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운동 칼럼>
- 구조가 문제로 보이는 자리 -
1. 카라
카라에서는 오랫 동안 많은 개들을 긴 시간 이동장에서 사육하였고 지금도 그러함이 보도되었다. 시민들은 크게 분노하였다. 카라 노조 인스타그램의 기사에 붙는 하트 숫자는 보통 200개 전후인데 이 보도를 실은 노조 인스타그램 기사에는 무려 7,000개의 하트가 붙었다.
카라 노조는 “지금도 구조 동물 40여 마리를 하루 평균 20시간씩 가둬두고 (이동장을) 사육 시설로 사용하고 있”으며 “일반 견사의 개 200여 마리 또한 오후 5시부터 오전 9시까지 하루 15시간을 사육장 내 이동장에 감금되어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카라는 “보호공간 부족을 이유로 '이동장 사육'을 한 것이 아”니며 “이동장(켄넬)은 사회화 교육을 위해 활용되고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동물을 대상으로 정당한 사유 없이 불필요하거나 피할 수 있는 고통과 스트레스를 주는 행위’를 동물보호법은 동물학대라고 부른다. 오랫동안 매일 15(16)~20시간을 이동장에 두는 것은 불필요하거나 피할 수 있는 고통과 스트레스를 주는 행위이다. 이러한 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는 사유는 무엇이 있을까?
카라는 장시간 이동장 사육의 사유를 교육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정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근거는 무엇일까? 카라는 이에 대해 어떠한 이론적 근거를 대지 않고 있다. 다만 “중대형견 전문 훈련소에서도 사회화 교육의 핵심 과정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말할 뿐이다.
카라가 정말로 사회화 교육을 위해 저런 행위를 하였다면 그 근거는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전에 나온 초기 행동주의 이론 외에는 찾기 힘들다. 초기 행동주의 이론은, 행동은 전적으로 환경적 자극과 반응의 연합으로 설명 가능하다고 보는 극단적 환경결정론이다. “건강한 아기 열두 명과 내가 원하는 환경을 주기만 한다면, 나는 그들 중 아무나 골라 의사, 변호사, 예술가, 상인, 거지, 도둑 등 내가 원하는 어떤 전문가로도 길러낼 수 있다고 장담하겠다. 타고난 재능이나 성향, 능력, 조상들의 인종과는 무관하게.”(John B. Watson, Behaviorism, 1930) 여기서 의식, 감정, 의도 등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초기 행동주의에 의하면 사회화 역시 자극과 반응의 결합을 학습시키는 단순한 조건형성 과정인 것이고 “사회화되었다”는 결과가 단지 “움직이지 않고 조용해졌다”는 반응으로 관찰될 뿐,
그것이 실제로 안정, 신뢰, 긍정적 학습을 의미하는지 판단할 수 없다. 이는 잔혹함을 ‘효과적 훈련’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가장 위험한 관점이다.
사람들은 장시간 이동장 사육이 교육을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이 카라가 거짓말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카라가 실제로 어느 정도는 그렇게 믿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외적 질서’에 극단적으로 집착해 온 카라의 속성 상, 나는 카라가 겉으로 드러나는 자극-반응의 결합 외에 동물의 고통이라는 실존적 사실에 둔감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카라의 관념성과 피상성은 카라 활동의 전 역사를 통해 관찰되는 현상이며 이는 공개되어 있는 카라 SNS의 피드 하나하나를 비평함으로써 보일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이 동물의 고통에 둔감한 것은 동물단체로서 치명적 문제점이다.
물론 카라의 입장문 전체를 찬찬히 보면 카라 스스로도 15(16)~20시간 켄넬 사육은 과한 것이고 그것이 공간부족에 기인함을 완전히 부인하지는 못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그런데 만약 이를 인정한다면 그 다음 이야기는 어디로 흘러가야 할 것인가? 전진경씨가 무리한 구조에 대해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하는가?
2. 구조
40여 년간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인권운동과 환경운동 등 다양한 사회운동과 그 철학에 대해 공부하고 실천하고 겪으면서 들었던 말 중 가장 황당무계한 말이 ‘무리한 구조’라는 말이다. 좋게 말해 황당무계한 것이고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가장 반동물적인 말이다.
이 ‘무리한 구조’라는 말은 동물판에 한 다리 걸치고 있는 사람들 입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이들은 ‘구조’가 절실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구조가 문제로 보이는 자리는 고통의 바다에 빠져 있는 가장 작은 존재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자리다. 요즘 지식인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외국 사조는 도나 해러웨이 등 신유물론이다. 이 사조에 젖은 사람들은 행위자로서의 사물과 고통을 느끼는 동물을 구분하지 못하고, ‘구원자’가 되려 하지 말고 ‘트러블과 함께 살기’를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이 느끼는 트러벌은 함께 살 만한 트러블인 것이다. 꼭 지식인 만은 아니다. 동물학대의 현장에서 동물을 위한 투쟁으로 단련되지 않은 수많은 ‘진보’들, 동물에 관한 한, 관념성과 피상성을 전혀 극복하지 못한 ‘진보’들 역시 그러하다.
구조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지자체 동물보호센터에서 안락사가 예정된 동물을 구조하는 것과 같은 측은지심이 돋보이는 구조가 있다. 다른 하나는 동물학대와 싸우면서 그 싸움의 부산물로서 발생하는 구조다. 전자는 수천년도 더 된 역사를 가진 구조이고 동물운동이나 동물해방과는 거리가 있는 구조이다. 후자는 동물해방을 위한 사회운동의 성장 과정에서 발생하는 구조이다. 전자는 민간동물보호시설을 운영하는 사람들에게서 자주 보이는 구조이고 후자는 학대 현장 유튜브 라이브와 시민 참여를 통해 이루어지는 구조이다.
후자의 구조는 세상 모든 일이 멈추더라도 있어야 할 구조다. 동물에 대한 억압과 착취는 사회의 근본 구조를 이루고 있고 따라서 그것은 광범위하고 강력한 사회운동을 통해서만 극복할 수 있으며 그러한 사회운동은 구체적 학대사건을 계기로 시민들이 행동으로 결집함으로써만 성장할 수 있다. 그런데 전자의 구조도, 비록 그것이 동물해방을 위한 동물운동의 성장에 기여하지 못한다고 해도 ‘무리한 구조’라고 불려서는 안된다. 도대체 누가 감히 이 ‘선의지’를 폄훼한단 말인가.
3. 개방성
구조 이후 과정은 매우 고달프다. 준비되고 계획된 구조 같은 것은 없다. 그런 구조가 있다면 그것은 전자의 구조도 아니고 후자의 구조도 아닌 장식적 구조다. 좋은 사람이라는, 좋은 단체라는 자기 이미지를 얻기 위한 구조다.
특히 후자의 구조는 불확실성 속으로 동물과 함께 투신하는 것이다. 확보된 자원 없이 야전병원을 세우고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64명의 양산 개와 함께 국회 앞 교통섬으로 오는 것이다. 계양산에서 300명의 뜬장을 때려부수고 얼기설기 펜스를 세워 시작하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구조의 개방성이다. 구조의 완결성이 아니라. 케어가 시작하였으나 케어가 완결짓지 않는 것이다. 카라에게 부족한 것이 있었다면 구조의 계획성이 아니라 불확실성의 감수다.
이것은 구조를, 더 나아가 동물단체의 운영을 사회운동의 한 형태로 이해하면 당연한 것이다. 구조와 동물단체의 운영을 싸이로(cilo)와 스카이캐슬을 짓는 것으로 생각하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진보’들이 입만 열면 ‘연결’을 외치지만 막상 현실의 문제가 부딪히면 여기와 저기를 경계짓고 무리한 구조 하지마라고 하고, 입으로는 도나 해러웨이를 따라 ‘퇴비되기’를 외치지만 몸으로는 퇴비 근처에도 가지 않으려고 한다.
4. 결어
동물단체가 동물학대를 하면 이상한가? 이 세상이 동물에게 지옥인데 이 지옥에 놓인 동물단체가 얼마나 다르겠는가? 나는 동물에게 대단한 것을 해 준 것 같아도 동물의 입장에서 고통과 스트레스를 얼마나 덜었겠는가?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우리 모두는 궁극적으로 공동체이다. 이 공동체가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죄없이 고통받는 이 약자들을 해방하는 것보다 더 절실한 것이 있겠는가? 우리 모두 이 해방을 위한 투쟁에 나서야 한다. 이 투쟁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교육도, 예술도 아니다. 서명과 행진도 아니다. 그것은 학대받는 동물의 곁으로 가서 학대자들과 맞서 싸우는 것, 이 싸움의 대오가 확대되어 국회와 정부를 집어 삼킬 만큼 커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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