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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짓드 바르도를 추모하며> 브리짓드 바르도와 제인구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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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짓드  바르도를 추모하며>

브리짓드 바르도와 제인구달....


약 3달 전, 제인 구달의 별세 소식이 전해졌을 때, 케어는 구태여 추모글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국내는 물론 전 세계가 그녀의 죽음을 애도했고, 그녀의 업적과 지성, 평생의 연구는 이미 충분히 존경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브리짓드 바르도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는 말을 듣고는  추모의 글을 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배우로서의 명성보다, 인간의 폭력 앞에서 끝까지 등을 돌리지 않았던 용기있는 삶을 선택한 세기의 동물운동가에 대한 국내 언론의 평판은 매우 인색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그녀는 종종 “개고기만 반대하던 감정적인 애견인”으로 축소됩니다.

논리도, 학문도 없이 서구의 감수성만 앞세운 인물처럼 말입니다. 

반면 제인 구달은 풍부한 학식과 과학적 언어로 존경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 대비는 우리 사회의 한계를 여전히 드러냅니다.

과학적 논문으로 말하는 인간의 윤리에는 존중하지만, 몸으로 버텨낸 윤리에는 여전히  인색하다는 것을.


브리짓드 바르도는 평생 조롱을 감수했습니다.

국가와 산업, 전통과 다수의 시선에 맞서며 사냥과 모피, 잔혹한 축산업과 전세계의 동물학대를 고발했습니다. 

그녀의 언어가 다소 거칠고 날것이었을지라도, 그 분노는 계산된 PR이 아니라 현장을 본 사람의 인간다운 무한한 책임이었습니다.


세련된 학술 발표 대신, 위험한 현장을 보여주며 불호령을 선택한 대가로 그녀는 오랫동안 오해받았습니다.


왜  세계적 스타가 30대 후반에 갑자기 자신의 명성과 자본을 스스로 깎아내리며 동물을 선택했을까요.

왜 “합리적”이라는 이름으로 미뤄온 문제를, 누군가는 지금 당장 멈추라 외쳤을까요.


지식은 중요합니다. 과학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동물권의 역사는 오직 연구실에서만 전진하지 않았습니다.

불편한 말, 과격한 항의, 고립을 감수한 행동들이 함께 밀어 올렸습니다.


오늘, 그녀를 추모하며 이 불균형을 비판합니다.

우리가 존경하는 것은 지식 그 자체가 아니라, 고통 앞에서의 태도여야 한다고.

브리짓드 바르도는 배우로만 기억되기에는, 너무 오랫동안 싸워온 투지와 용기의 동물운동가였습니다.


부디 이제는 그녀를 이렇게 기억합시다.

아름다움으로 시작해, 인간으로서의 책임으로 끝까지 걸어간 동물들의 편에 선 한 동물운동가로. 


브리짓드 바르도는 ‘전 세계 동물운동의 흐름을 바꾼 선구자’였습니다.

도살장의 잔혹성을 고발하며 프랑스 대통령에게 기절 후 도살하도록 요구하는 등 많은 동물학대를 고발하며 국제적 캠페인을 촉발했고 60년대에 동물보호소를 건립하며  전 세계 동물보호 단체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자신의 이름을 딴 <브리짓드 바르도 재단> 은 프랑스에서 가장 큰  글로벌 재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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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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