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채식에 대한 오해(고기만 안 먹으면 될까?) > 비건과 건강

본문 바로가기

비건과 건강

송무호

부산동의의료원 의사 | 채식하는 정형외과 전문의

목록

11. 채식에 대한 오해(고기만 안 먹으면 될까?)

페이지 정보

본문

채식해서 건강이 더 나빠졌다는 분들도 있다. 지난 7년간 채식을 해서 있던 병도 고치고 훨씬 건강해진 나로서는 참 이해하기 힘든 말이다. 이런 분들은 채식을 잘못 알고 있는게 분명하다.

 

채식이란 단어는 나물 채(菜), 먹을 식(食) 자로 구성되어 있다. 단어 뜻만 본다면 채소만 먹는 것을 의미하지만 채소만 먹어서는 건강을 유지할 수가 없고, 곡식과 과일을 반드시 같이 먹어야 한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곡식이며 주식(主食)으로 삼아야 한다. 왜냐면 곡식은 칼로리와 영양분을 가장 많이 포함하고 있기에 건강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곡식을 어떤 방법 또는 어떤 상태로 먹는가도 중요한데 쌀(현미)은 완전식품으로 탄수화물뿐만 아니라 단백질과 지방 그리고 각종 비타민, 미네랄, 섬유질 등의 영양분이 많이 들어있다. 이런 쌀의 영양분들은 대부분 쌀눈과 미강(bran, 쌀겨, 쌀의 속껍질)에 들어 있는데, 일반적으로 흔히 먹는 흰쌀(백미)을 만들기 위한 도정과정에서 많은 영양분들이 소실된다. 따라서 현미를 먹어야 한다. 백미를 먹으면 주로 탄수화물만을 먹게 되니 건강에 불리하고, 올바른 채식에서는 피해야 할 식품이다 [1].

 

채소나 과일은 자연 상태 그대로 씹어 먹는 게 가장 좋은데 이것을 먹기 좋게 즙을 내거나 갈아서 주스로 먹으면 영양 가치가 떨어진다. 건강에 중요한 섬유질이 대부분 제거되기 때문이다. 공장에서 나오는 과일 주스나 채소 주스들은 여기에 당을 첨가하는 경우가 많아 더욱 좋지 않다. 과일과 채소도 가공식품은 피해야 한다.

 

약 10년 전 미국 작가인 리어 키스(Lierre Keith)란 분이 ‘채식의 배신’이란 책으로 육식 옹호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은 적이 있다. 이분은 20년간 동물성 식품을 입에 전혀 대지 않는 비건(vegan) 생활을 하다 건강이 나빠져서 다시 고기를 먹는다고 주장했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 중 의학적인 오류들이 많이 있으나 대표적인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섬유질이다. 저자는 인간은 식물에 포함된 섬유질을 소화할 수 없기에 이러한 성분이 포함된 식품은 인간에게 맞지 않으니 먹지말고, 섬유질을 분해하고 소화시켜 에너지를 만드는 동물을 먹는게 좋다고 주장한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옛날에는 섬유질이 소화가 안되기에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 성분으로 여겼으나, 현대 의학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영양소로 간주하여 5대 영양소인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비타민, 미네랄에 이어 6대 영양소로 섬유질을 꼽는다.

 

왜일까? 식이섬유(dietary fiber)라는 용어는 1953년 영국의 의사 Eben Hipsley가 식물 속에 분포하는 섬유질 중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섬유질을 지칭하면서 처음 등장했는데, 그 당시만 해도 식이섬유란 먹을 수는 있지만, 소화도 안되고 칼로리도 없기에 영양학적 가치가 없는 물질로 간주되었다. 1972년 Trowell 등이 식이섬유가 심장병이나 대장암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식이섬유가설(dietary fiber hypotheses)을 발표한 이후 식이섬유에 대한 연구들이 대거 등장하였다. 1995년 미국 공인분석화학회(AOAC, Association of Official Analytical Chemists)에서 식이섬유의 의학적 정의가 만들어졌으며, 이후 수용성(soluble)과 불용성(insoluble) 식이섬유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2]. 사람의 위나 소장에서 분해되지 않는 식이섬유라 하더라도 대장에 도달해서 장내 유익균의 먹이가 되고 분해되어 단쇄지방산(short-chain fatty acids)을 생산하고 이 물질이 우리 몸에 유익한 여러 가지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안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3].

 

지금까지 밝혀진 식이섬유의 역할은 다음과 같다. 섬유질이 풍부한 음식은 위장에서 포만감을 증가시켜 주는 반면, 공복감은 지연시키고 칼로리가 적기에 비만이 예방된다. 즉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고 오히려 살이 빠진다 [4]. 소장에서는 당 흡수 속도를 늦춰 혈당의 급격한 상승을 억제하고 인슐린 분비를 완만하게 조절하여 공복혈당 및 당화혈색소(HbA1c) 수치를 감소시켜 당뇨병 예방 및 치료에 도움이 된다 [5]. 장내에서 담즙산과 결합하여 콜레스테롤의 체외 배출을 도와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므로 고혈압과 심장병이 예방된다 [6]. 동물성 음식에는 섬유질이 하나도 없기에 대변량이 줄어들어 변비로 고생하는 반면, 섬유질이 풍부한 음식은 소화되지 않고 대장까지 내려간 식이섬유가 대장 속 음식물 찌꺼기와 함께 대변량을 늘리고 장운동을 촉진하여 변비를 없애며, 대장 벽을 청소하는 역할을 해 숙변 제거에 도움이 되고, 이 과정에서 발암물질 및 독소를 배출하여 대장암 예방 효과도 있다 [7].

 

그래서 현재 미국영양학협회(Academy of Nutrition and Dietetics)에서는 식물성 음식을 통한 식이섬유 섭취를 적극 권장하고 있으며, 하루에 성인 여성 26g, 성인 남성 38g을 권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미국인의 경우 인구의 95%가 권장량에 못 미치는 식이섬유를 섭취하고 있어 심각한 문제라고 한다 [8].

 

섬유질 부족과 관련된 질병인 변비, 비만, 당뇨, 고혈압, 심장병, 대장암 등은 현대인들이 가장 흔히 앓고 있는 만성 질환이 아닌가? 그 문제를 해결해주는 가장 중요한 영양소가 바로 식이섬유다 [9]. 현실이 이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저자는 1950년대의 섬유질 사고방식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

 

저자는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책의 내용을 보면 “나는 비건 생활 동안 항상 배가 고팠다. 먹는 음식은 전부 탄수화물이었고 저혈당을 반복해서 경험했다.” “건강을 위해 인간이 섭취해야 하는 탄수화물의 양은 0이다.” “복합 탄수화물과 단순 당은 사실 별 차이가 없다.” “구운 감자를 먹는 것과 청량음료 한 병을 마시는 것은 둘 다 포도당 50g이 들어있기에 대사적으로 별 차이가 없고, 혈당 상승 측면에서 볼 때 감자 쪽이 살짝 더 나쁜 음식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을 볼 때 이 저자가 얼마나 영양학에 대해 무지한가를 알 수 있다.

 

복합 탄수화물은 결코 단순 당과 동일하지 않다. 현미, 고구마, 감자, 과일 등 정제되지 않은 복합 탄수화물 식품은 섬유질이 많아 혈당을 천천히 올리고 내리기 때문에 저혈당이 오지 않고 공복감 또한 늦게 온다. 단순 당으로 이루어진 식품인 청량음료, 과일주스, 케이크, 과자, 디저트류 등은 혈당을 급히 올리고 그에 따라 인슐린 분비가 급증하므로 저혈당에 쉽게 빠지고 공복감이 빨리 온다. 따라서 저자가 경험한 증상들은 단순 당으로 이루어진 음식들을 평소에 너무 많이 먹었기에 생기는 것들이다. 즉 균형 잡힌 식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건강 문제가 생긴 것이다.

 

채식을 할 때 식물성 식품이면 아무거나 다 먹어도 된다는 오해를 하기 쉽지만, 자연 상태의 채식 식품과 가공된 채식 식품을 반드시 구분해야 한다. 사람들은 비교적 거친 자연 상태인 식품보다는 가공하여 부드럽고 달콤해진 식품을 더 좋아한다. 하지만 모든 가공 식품에는 몸에 좋은 섬유질이 대부분 제거되어 있는 반면, 몸에 해로운 여러가지 첨가물과 방부제 등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가공된 채식 식품(라면, 흰빵, 백미, 떡, 감자칩, 튀김류, 분식류, 도넛, 아이스크림, 설탕, 식용유 등)을 좋아하고 많이 드시는 분들을 요즘 말로 정크비건(Junk vegan)이라 하는데, 이런 분들은 고기를 먹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영양의 불균형으로 건강이 나빠진다.

 

 

채식이라고 다 같은 채식이 아니다. 채식을 할 때는 건강한 자연 상태의 식품을 먹는 채식을 해야 하는데, 가공된 식품을 먹는 채식과 구분하기 위하여 요즘은 ‘자연식물식(Whole-foods plant-based diet)'이란 용어 사용을 권장한다.

 

고기만 안 먹는다고 채식이 아니다. 올바른 채식을 해야 한다. 올바른 채식은 자연식물식이다.

 

참고문헌

1. AS Saleh, P Wang, N Wang, et al. Brown Rice Versus White Rice: Nutritional Quality, Potential Health Benefits, Development of Food Products, and Preservation Technologies. Comprehensive Reviews in Food Science and Food Safety 2019;18(4):1070-1096.

2. JW DeVries, L Prosky, B Li, S Cho. A historical perspective on defining dietary fiber. Cereal foods world 1999;44(5):367-369.

3. K Makki, EC Deehan, J Walter, F Bäckhed. The impact of dietary fiber on gut microbiota in host health and disease. Cell host & microbe 2018;23(6):705-715.

4. NC Howarth, E Saltzman, SB Robert. Dietary fiber and weight regulation. Nutrition Reviews 2001;59(5):129-139.

5. RE Post, AG Mainous, DE King, KN Simpson. Dietary Fiber for the Treatment of Type 2 Diabetes Mellitus: A Meta-Analysis. The Journal of the American Board of Family Medicine January 2012;25(1):16-23.

6. DE Threapleton, DC Greenwood, CEL Evans, et al. Dietary fibre intake and risk of cardiovascular disease: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BMJ 2013;347:f6879.

7. ME Arayici, N Mert-Ozupek, F Yalcin, et al. Soluble and Insoluble Dietary Fiber Consumption and Colorectal Cancer Risk: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Nutrition and Cancer 2022;74(7):2412-2425.

8. WJ Dahl, ML Stewart. Position of the Academy of Nutrition and Dietetics: Health Implications of Dietary Fiber. J Acad Nutr Diet 2015;115(11):1861-1870.

9. JW Anderson, P Baird, RH Davis, et al. Health benefits of dietary fiber. Nutrition Reviews 2009;67(4):188-205. 

추천0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