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염증이란 나쁜 것인가?(RICE 요법은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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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약을 잘 먹지 않는다. 그래서 환자들에게 권하는 약도 아주 소량이다. 특히 급성 염증 반응으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증상에는 더욱 그러하다. 정형외과에서 흔히 쓰는 소염제, 진통제 등의 한계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염증을 영어로는 inflammation이라 하는데 라틴어로 ‘flamma’가 화염, 불꽃이란 뜻이므로 inflammation은 몸 안에 불이 났다는 의미이고, 한자에서도 염증(炎症)의 ‘염(炎)’은 불이 났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염증이라 하면 일반적으로 몸에 나쁜 것, 혹은 병이 생긴 것으로 오해하기가 쉽다. 하지만 의학적 의미에서 염증이란 여러 가지 원인으로 손상된 조직을 회복시키려는 자연치유력 현상이고 몸에 이로운 반응이다. 로마 시대 셀수스(Celsus)가 염증의 4가지 주요 소견을 처음 기술하였는데 발적(Redness), 열감(Heat), 부종(Swelling), 통증(Pain)이 그것이다 [1].
급성 염증 반응은 칼에 베이거나 못에 찔리는 등 조직이 손상되거나 세균 또는 바이러스의 침범을 받았을 때 일어난다. 쉽게 예를 들어, 운동하다 다쳐 근육이 부분 파열되면 손상된 근섬유는 이제 쓸모가 없기에 이들 파괴된 조직을 우선 없애야 하는데, 이 일은 혈액 속에 있는 백혈구가 주로 담당한다. 손상된 조직에서는 히스타민이나 사이토카인 등 염증매개물질(inflammatory mediators)들은 분비하여 백혈구 등 여러 가지 염증세포들을 불러 모으는데 그 과정에서 혈관이 확장되고, 혈류가 증가되고, 모세혈관 투과성이 증가되어 백혈구가 혈관 속을 잘 빠져나와 염증부위로 모이게 해서 파괴된 조직을 처리하고 상처를 낫게 한다 [2].
발적과 열감은 염증부위에 혈액 순환이 증가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고, 부종은 모세혈관 투과성 증가로 인근 조직에 체액이 축적되어 생기고, 통증은 상처부위의 조직에서 분비되는 히스타민과 프로스타글란딘 등의 화학물질들이 신경을 자극하여 생긴다. 따라서 열이 나고, 붓고, 아픈 것은 상처를 고치기 위한 치유 과정에서 일어나는 자연현상이지 몸에 해로운 것은 아니다.
단편적으로 ‘붓는 것은 나쁘다, 열이 나는 것은 나쁘다, 따라서 상처부위를 차갑게 식혀야 한다’는 생각에 상처부위에 얼음을 대고 차갑게 하면 당장은 시원한 느낌과 냉각 부위의 마취효과로 통증이 덜 하고 부기와 열감이 감소되어 상처가 호전되는듯한 느낌을 가질 수는 있으나, 얼음으로 냉각하는 건 혈관을 수축시켜 염증 반응, 즉 자연치유력을 방해하여 상처 회복을 더 느리게 한다 [3,4,5].
요즘 스포츠 및 여가활동 참여 인구 증가로 인하여 타박상이나 관절 염좌 등 스포츠 손상이 증가하고 있다. 이런 환자가 발생했을 때 응급처치로 대부분 RICE 요법을 시행한다. Rest(휴식), Ice bag(얼음찜질), Compression(압박), Elevation(거상)이 그것인데 1978년 Gabe Mirkin이란 의사가 그의 저서 ‘The sports medicine book'에서 처음으로 기술했었고, 지난 수십 년간 스포츠 손상의 기본 치료법으로 인구에 회자되었다. 하지만 그의 주장이 틀렸다는 여러 연구결과가 나오자 2015년 그의 홈페이지(DrMirkin.com)에서 RICE 요법은 염증을 완화하여 치유에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치유를 방해하는 잘못된 방법이라고 시인을 하였다 [6]. 하지만 이미 사람들의 뇌에 각인된 RICE 요법이 워낙 강력하기에 아직까지도 의학의 일선에서는 여전히 RICE 요법을 사용하고 있다.
필자는 위와 같은 이유로 무릎 수술받은 환자의 절개 부위에 얼음주머니를 대지 않는다. 이전 얼음주머니를 루틴으로 대던 시절과 대비하여 상처부위 문제들이 오히려 줄었고 아무 문제없이 잘 낫고 있다.
관절염이 진행되어 일상생활이 어려울 만큼 통증이 심한데도 불구하고 환자들은 수술을 많이 겁내어한다. 이유는 수술로 인한 통증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사실 요즘은 수술 후 환자가 통증을 거의 못 느낄 정도로 통증 관리 기술이 발달되어 있다). 통증은 우리 몸의 이상을 신속히 알리고 경고하는 중요한 방어기전 중의 하나로 체온, 혈압, 맥박, 호흡과 더불어 다섯번째 생체징후(the 5th vital sign)라 칭한다 [7].
따라서 통증이 있음으로 해서 좋은 점들이 많다. 우선 통증이 있어야 내 몸 어디가 아픈지 알 수 있다. 통증이 생기면 우선 겁을 내고 이유가 뭔지 찾으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나을 것인지 스스로 정보를 찾아보기도 하고 병원을 방문하게 된다. 통증이 있으면 그 부위를 안 아프게 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안정을 취하며 자연치유를 도모한다. 따라서 통증 초기에는 성급히 약을 쓰지 말고, 통증의 원인이 뭔지를 우선 알아본 후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물론 그 해결책이 다 있는 것은 아닐지라도 진통제 등 약은 최소한의 양만 사용하는 것이 좋다.
성급히 진통제인 타이레놀(Acetaminophen)이나 NSAID(non-steroidal anti-inflammatory drugs)를 사용해서 통증을 없애고 나면, 조심하지 않고 더 무리를 하게 되어 병이 더 빨리 진행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통증이 있다고 진통제를 바로 쓰는 것은 신중해야 하고 또 모든 약에는 부작용이 있다. 진통제를 오래 사용하게 되면 위장, 간, 콩팥 등이 상하게 된다 [8,9].
마찬가지 원리로 해열제도 몸에 이롭지 않다. 바이러스나 세균에 의한 감염이 생기면 열이 나게 되어있다. 열이 나는 것은 병을 낫기 위한 염증 과정에서 나타나는 좋은 현상이다. 몸에 열이 나면 혈액순환이 좋아지고 면역력이 증가되어 병이 빨리 낫게 된다. 하지만 해열제나 소염진통제를 남발하면 선천 면역 반응을 억제하여 병을 더 오래 끌거나 심지어는 치유를 방해할 수도 있다 [10].
염증은 병을 고치기 위한 과정에서 일어나는 자연현상이다. 염증을 급히 없애려는 조치들은 자연 치유력을 방해하여 상처 치료나 바이러스 감염병으로부터의 회복을 더디게 한다. 우리 몸의 회복력을 믿고 염증이 잘 진행되도록 도와주는 게 최선의 방책이다.
염증은 우리 몸을 해치는 적군이 아니라, 우리가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아군이다.
참고문헌
1. MO Freire and TE Van Dyke. Natural resolution of inflammation. Periodontology 2013;63(1):149-164.
2. R Medzhitov. Origin and physiological roles of inflammation. Nature 2008;454:428-435.
3. JCM Prins, JH Stubbe, NLU van Meeteren, et al. Feasibility and preliminary effectiveness of ice therapy in patients with an acute tear in the gastrocnemius muscle: a pilot randomized controlled trial. Clinical Rehabilitation 2011;25(5):433-41.
4. CY Tseng, JP Lee, YS Tsai, et al. Topical cooling (icing) delays recovery from eccentric exercise-induced muscle damage. J Strength Cond Res 2013;27(5):1354-61.
5. LA Roberts, T Raastad, JF Markworth, et al. Post-exercise cold water immersion attenuates acute anabolic signalling and long-term adaptations in muscle to strength training. J Physiol 2015;593(18):4285-301.
6. https://www.drmirkin.com/fitness/why-ice-delays-recovery.html
7. MS Walid, SN Donahue, DM Darmohray, et al. The fifth vital sign-what does it mean? Pain Practice 2008;8(6):417-422.
8. A Aminoshariae, A Khan. Acetaminophen: old drug, new issues. Journal of Endodontics 2015;41(5):588-593.
9. HE Vonkeman, MAFJ van de Laar. Nonsteroidal anti-inflammatory drugs: adverse effects and their prevention. Seminars in Arthritis and Rheumatism 2010;39(4):294-312.
10. M Inaoka, M Kimishima, R Takahashi, et al. Non-steroidal anti-inflammatory drugs selectively inhibit cytokine production by NK cells and T cells. Experimental dermatology 2006;15(12):98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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